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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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일상

엄마

by 월가의 영웅들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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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산 욕실 용품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
엄마랑 아빠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오피스텔을 닦고 또 닦았다
엄마는 챙겨온 짐까지 옷장에 다 넣고 정리를 해주려고 하기에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플라스틱이나 금세 쓰고 버릴것을 싫어해서 이 오피스텔에도 욕실에는 원래 있던 크록스를, 수건은 몇개만 가지고 돌려쓸 생각이었다
휴지통도 따로 안사고 그때그때 버릴 생각이었다. 엄마는 펄펄 뛰면서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있어야지 그게 뭐냐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엄마랑 아빠랑 근처 마트에 들려서 이것저것을 샀다
엄마는 마음에 드는 생활용품이 없다며 길건너 다른 마트까지 다녀왔다
엄마는 욕실 슬리퍼로는 분홍색 키티를, 쓰레기통으로는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것을 사왔다
미키마우스는 내가 엄마랑 소품샵에 갔을때 살까? 하다가 이것도 결국 쓰레기 늘리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안샀던 것이다
엄마는 그걸 기억하고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휴지통을 사온것이다
엄마 아빠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가지고 싶다는 것은 꼭 기억해서 나중에라도 사주고는 했다.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이라도 사주셨다.
이번에도 그랬다. 엄마는 장성한 자식이 소품샵에서 살까말까 고민하던 그걸 기억해서 사오신 것이다
엄마, 신이 모든 인간 곁에 있을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대
엄마 다음생에는 엄마가 내 딸해
내가 집에서 엄마한테 장난처럼 ㅇㅇ이는 가만히 있어 엄마가 쓰레기 버리고 올게~ 라고 한것처럼 엄마가 이번생에는 외할머니랑 함께 있던 시간이 짧았던거 그거 다음생에는 내가 다 줄게
엄마 내 옆에 오래있어줘 나는 엄마 없이는 못살아 알지?
엄마 엄마 엄마 보고 있어도 항상 보고 싶은 우리 엄마

h의 엄마 좋게 말하면 자식 사랑이 지나쳤고 나쁘게 말하면 치맛바람이 너무 셋다
h의 엄마가 보험을 판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실 가정주부에 가까웠다
교무실을 장학사보다 더 들락거려서 h 엄마가 오는 날이면 애들은 h 에게 너네 엄마 또왔다 라며 알려주고는 했다.
h엄마는 h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 전, 중학교 2학년때 전교 회장을 만들어줬다. h랑 키큰 남자애 하나랑 엮어서 사진관가서 멋진 포스터용 사진을 뽑아 유세 운동에 필요한 물품까지도 멋들어지게 사줬다.
h가 다른 애랑 비품창고용 수레를 가지고 놀다가 앞 고등학교 선생님 자동차의 앞문짝을 부순것은 생기부에서 쏙 빠졌다. 지방 학교답게 학부모가 교무실에 몇번와서 조잘거리고 과일 쪼가리 몇개를 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h는 전교 학생회장을 하더니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미국 유학을 간다. h네 할머니는 h가 미국에 무사히 도착할때까지 물한모금 안마시고 기다렸다고 한다. h네 집은 원래 주유소를 한다고 했는데 h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며 주유소를 팔았다고 들었다. h의 미국 유학 1년 후, h의 여동생 또한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h와 그녀의 여동생은 ucla인가 하여튼 u뭐시기로 시작하는 명문대학교에 들어갔다. h의 소식이 갑자기 궁금해져 나답지 않게 인스타로 찾아본 것인데 그것이 내가 대학생때 무렵이었으니 그들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사회인이 되었으리라.
h가 기억에 남는것은 그 어머니의 유난스러움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인소가 굉장히 유행이었는데 핸드폰에 소설 파일을 넣고 그걸 틈틈히 읽는 애들이 많았다. h도 그런 애들 중에 하나였다. 하필 h가 읽던 인소가 동성애가 들어간 내용이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하필 핸드폰을 열다가 그걸 본거였다. 그후로 h의 핸드폰은 피쳐폰으로 바뀌었다. 애들한테는 공부해야해서 핸드폰을 바꾸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h의 어머니가 인소를 본것이 화근이었다.
h는 중학교 시절은 다 잊었는지 미국 유학 당시 한국에 몇번 방문했을때 초등학교 친구들만 보고 갔다. 심지어 같은 중학교 애들이 많이 진학한 고등학교에 와서도 자기 초등학교 친구들만 보고가서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중학교 동창이 나한테 이걸 쪼르르 일를 정도였다.
h가 이런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중학교가 상당히 질이 안좋았다. 분명히 중학교는 랜덤으로 배치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한반의 절반을 차지했다. 중학교 시절은 나에게 집안 형편이 안좋은 애들은 인성도 나쁠거라는 편견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반에서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고 은따도 수시로 바뀌었다. 늙다리 선생들은 이런 일에 관여하는 것도 싫어해서 모르쇠하기 일관이었다. 다만 학교에 뺀질나게 드나드는 엄마를 가진 h에게만은 예외였다.
지방의 특색일지도 모르겠지만 얼마안되는 서민 가정의 부모들도 학교에 자주 오지는 않았다. 다 선생님이 알아서 할것을 부모가 드나들면 선생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였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인 m선생은 기초생활 수급자 학생들 사이에서 방학때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온 내가 못마땅했는지 어학연수 받고 온 증명서를 내밀며 생활기록부에 써달라고 하자 이를 거절했다. 학교외 활동이니 써줄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도권 학생들은 방학때 필리핀이며 미국이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일이 흔했는데 m선생은 꼴에 기초생활수급자 애들이 불쌍했는지 그런 내용은 생기부에 적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h에게만은 예외였다. 또한 1학년때 반장을 맡은 j에게 체벌을 한후 j의 부모가 학교로 쫓아와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고 따져 묻자 그후로 체벌을 안했다. 꼴에 선생이라고 가지고 있는 사상은 부모가 교무실로 쫓아오면 단숨에 사라지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런 m 선생도 물건이나 돈이 없어지는 사건에는 모르쇠를 일관했다. 물건 주인이 잘 챙겼어야지 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나 m 선생의 아들은 앞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다른 선생들도 m선생들의 아들을 나름대로 대우해주는 것 같았다. 원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볼륜인 것이다.
여하튼 h가 지금은 어떻게 살런지는 모르겠다. 해외대 출신이라도 별수 없는게 결국 나처럼 한국으로 귀국해서 일자리를 구해야하는 실상이라 그녀가 직업은 있는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는 모르겠다.
뭐 유학파라도 별거없다 결국 나처럼 한국으로 기어들어와 취업해야 하는 실상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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